이른 무더위가 시작되고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가 다가오면 조상들은 본격적인 여름채비로 분주해지곤 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집 마당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짙은 초록색 떡을 얻어먹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수레바퀴 모양의 정갈한 문양이 새겨진 그 떡은 은은한 풀향과 함께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었습니다. 냉장고나 보존제가 없던 시절, 습하고 무더운 여름철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지혜를 더했던 조상들의 식문화는 지금 생각해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여름의 길목인 단오에 즐겨 먹던 쑥떡과 수리취떡에 담긴 과학적 지혜와 문화적 의미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수리취떡


1. 단오의 상징 수리취떡: 수레바퀴 문양에 담긴 액운 퇴치의 기원

학창 시절 세시풍속을 배울 때 단뱃날(단오)에 왜 수리취떡을 먹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수리'라는 말은 달과 날이 모두 5가 겹치는 5월 5일, 즉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인 '신(神)의 날' 혹은 '수레'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떡살로 떡수레 모양을 꾹 눌러 찍어내시던 모습이 참 신기했는데, 동그란 떡 위에 새겨진 수레바퀴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수레바퀴처럼 만물이 원활하게 굴러가고, 액운과 돌 전염병을 물리쳐 한여름을 무사히 넘기고자 했던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창포물 머리 감기와 함께 수리취떡 한 조각을 베어 물면 한여름의 악귀나 질병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조상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삶의 기로에서 큰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둥근 수레바퀴 문양을 떠올리며 모든 일이 순탄하게 잘 굴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슴이 따뜻해지곤 합니다.

[출처 및 참고]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단오 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수리취떡' 항목


2. 여름철 음식이 쉽게 쉬지 않는 이유: 수리취와 쑥의 천연 방부 지혜

요즘이야 더운 날씨에도 냉장고나 냉동고가 있어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전기가 없던 옛날에는 여름철 음식이 쉽게 상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어릴 적 시골 방앗간에서 쪄낸 수리취떡이 며칠이 지나도 쉰내 없이 쫄깃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수리취와 쑥에 들어있는 천연 정유 성분과 강력한 항균 작용에 있었습니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수리취와 쑥에는 세균이나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하는 유기산과 풍부한 식이섬유, 그리고 항산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쌀가루에 수리취나 쑥을 듬뿍 넣어 반죽을 치대면, 멥쌀의 수분 증발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여름철 미생물의 번식을 자연스럽게 차단해 줍니다. 인공 보존제 하나 없이 오직 자연에서 얻은 산나물의 성질을 이용해 음식의 보존성을 높였던 조상들의 지혜는, 현대 식품영양학 관점에서도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탁월한 과학이었습니다.

[출처 및 참고] 한국식품연구원 전통 절기 떡의 산화 방지 및 보존성 연구,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의 절기 음식'


3. 무더위를 이겨내는 기운: 단오 쑥떡과 수리취의 영양학적 가치

단오 무렵 들판이나 산자락에서 채취하는 쑥과 수리취는 일 년 중 가장 약성이 뛰어나고 무성할 때입니다. 이 시기의 쑥은 ‘단오 쑥’이라 불리며 약용으로 으뜸으로 쳤습니다. 여름철 장마와 더위가 시작되면 몸이 쉽게 나른해지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조상들은 영양이 풍부한 단오 쑥떡과 수리취떡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력을 보충했습니다.

수리취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며,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돕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줍니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쑥 역시 차가운 음료나 음식으로 상하기 쉬운 여름철 위장을 따뜻하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어릴 적 배가 아프거나 입맛이 없을 때 어머니께서 쑥인절미나 수리취떡을 참기름에 고소하게 구워주시면 거짓말처럼 속이 편안해지던 후기가 떠오릅니다. 제철에 나는 자연 재료로 몸의 균형을 맞추었던 지혜는 오늘날 건강식을 찾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출처 및 참고] 문화재청 국가무형유산 '떡 만들기' 학술조사서, 한국학술정보 산나물의 약리적 효능과 전통 식문화 연구


4. 현대에 되새기는 전통의 온기: 여름의 길목에서 나누는 상생의 맛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단오는 과거만큼 큰 명절로 체감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트에 가면 사계절 내내 포장된 떡을 살 수 있고, 더위를 피할 에어컨과 냉장고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짙은 초록빛의 수리취떡이나 쑥떡을 맛볼 때면, 자연의 시간표에 맞추어 삶을 정돈하고 이웃과 온기를 나누던 옛날의 풍경이 아른거립니다.

단옷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 갓 쪄낸 수리취떡을 큼직하게 떼어 나누어 먹으며 다가올 한여름의 건강을 서로 빌어주던 문화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선 깊은 정서적 연대였습니다. 각박한 일상 속에서도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정성스레 만들어진 전통 떡 한 조각을 나누며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여유가 그리워집니다. 이번 여름에는 정갈하게 쪄낸 수리취떡 한 상자로 조상들의 지혜를 되새기며, 지친 몸과 마음에 푸른 자연의 기운을 선물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 및 참고] 온지음 맛공방 전통 절기 음식의 현대적 변용,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의 절기 세시풍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