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를 사려고 검색하면 멥쌀가루와 찹쌀가루 외에도 습식, 건식이라는 낯선 표현이 보입니다. 둘 다 하얀 가루라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같은 양의 물을 넣어 반죽하면 차이가 금방 드러납니다. 한쪽은 적당히 뭉쳐지는데 다른 쪽은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거나 예상보다 질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쌀의 종류만 같으면 결과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떡 반죽의 수분을 맞추다 보면 쌀가루가 만들어진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습식 쌀가루와 건식 쌀가루는 쌀을 불린 뒤 빻는지, 마른 상태로 분쇄하는지에 따라 나뉩니다. 이러한 제조 방식의 차이는 쌀가루의 보관 방법부터 반죽 상태와 완성된 떡의 식감까지 영향을 줍니다.
1. 습식 쌀가루는 불린 쌀을 빻아 만듭니다
습식 쌀가루는 쌀을 깨끗하게 씻어 물에 불린 뒤 물기를 뺀 상태에서 곱게 빻아 만듭니다. 떡집이나 방앗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쌀가루가 대표적입니다.
쌀이 수분을 충분히 흡수한 상태에서 분쇄되기 때문에 입자가 비교적 곱고 부드럽습니다. 손으로 한 줌 쥐어 보면 가루가 쉽게 뭉쳐지고, 살짝 건드렸을 때 부드럽게 풀어지는 느낌이 납니다. 마른 가루라기보다 촉촉한 모래를 만지는 듯한 질감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습식 쌀가루는 백설기, 송편, 절편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중요한 떡에 잘 어울립니다. 다만 쌀을 불린 시간과 물기를 뺀 정도에 따라 수분 함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습식 쌀가루라도 항상 똑같은 양의 물을 넣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수분이 많은 만큼 보관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방앗간에서 갓 빻은 쌀가루는 오래 두지 말고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은 쌀가루는 한 번 사용할 분량으로 나누어 밀봉한 뒤 냉동 보관해야 변질을 늦추고 다른 음식의 냄새가 배는 것을 줄일 수 있습니다.
2. 건식 쌀가루는 마른 쌀을 바로 분쇄합니다
건식 쌀가루는 쌀을 물에 불리지 않고 마른 상태에서 분쇄해 만듭니다. 마트나 온라인에서 밀가루처럼 봉지에 담겨 상온 판매되는 제품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건식 쌀가루의 가장 큰 장점은 보관과 계량이 편하다는 점입니다. 필요한 만큼 덜어 사용한 뒤 입구를 잘 닫아 보관할 수 있어 쌀쿠키, 머핀, 부침개와 같은 간단한 요리에 활용하기 좋습니다.
다만 단단한 쌀을 마른 상태로 분쇄하면 제분 과정에서 일부 전분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손상된 전분의 양과 가루의 입자 크기는 물을 흡수하는 정도와 반죽의 점도에 영향을 줍니다. 제품마다 같은 양의 물을 넣었는데도 반죽 상태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건식 쌀가루가 습식 쌀가루보다 무조건 품질이 낮은 것은 아닙니다. 건식 제분에 알맞은 쌀 품종과 제분 기술을 사용하면 고운 입자의 쌀가루를 만들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가루쌀도 물에 불리는 과정 없이 분쇄하기 적합하도록 개발된 품종입니다. 따라서 제분 방식뿐만 아니라 쌀의 품종과 제품의 권장 용도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3. 같은 조리법을 적용하면 반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습식 쌀가루와 건식 쌀가루를 바꾸어 사용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물의 양입니다. 습식 쌀가루는 이미 수분을 머금고 있지만 건식 쌀가루는 상대적으로 수분이 적습니다. 습식 쌀가루용 조리법에 건식 쌀가루를 그대로 사용하면 반죽이 푸석하거나 완성된 떡이 단단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떡 반죽에 물을 조금 넣었을 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손으로 비벼 체에 내리는 과정에서 한쪽은 부드럽게 뭉치고, 다른 쪽은 계속 흩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조리법에 적힌 물을 한꺼번에 더하면 오히려 반죽이 질어질 수 있습니다.
떡 반죽은 물을 조금씩 넣어 가며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쌀가루를 손으로 꽉 쥐었을 때 한 덩어리로 뭉쳐지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면 부서지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너무 쉽게 흩어진다면 물이 부족한 것이고, 손에 축축하게 달라붙는다면 물이 많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쌀가루의 보관 기간과 실내 습도에 따라서도 필요한 물의 양이 달라집니다. 정해진 숫자만 따르기보다 반죽을 직접 만져 보면서 조절해야 실패를 줄일 수 있습니다.
4. 만들 음식에 맞춰 쌀가루를 선택해야 합니다
습식 쌀가루와 건식 쌀가루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지에 따라 알맞은 쌀가루를 고르는 일입니다.
백설기나 송편처럼 쌀가루 자체의 촉촉한 식감이 중요한 떡에는 습식 쌀가루가 비교적 다루기 편합니다. 반면 쌀쿠키, 머핀, 부침개처럼 정확한 계량과 간편한 보관이 필요한 음식에는 건식 쌀가루가 잘 맞습니다. 쌀빵이나 쌀국수를 만들 때는 습식과 건식만 구분하지 말고 제빵용이나 제면용처럼 포장지에 표시된 권장 용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포장된 가루가 보송보송하다고 해서 모두 건식 쌀가루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쌀을 불려 습식으로 제분한 다음 다시 건조해 판매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겉모습만으로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품 설명에서 제분 방식과 수분 함량, 보관 방법을 확인해야 합니다.
떡이 생각보다 푸석하거나 반죽이 자꾸 질어진다면 솜씨부터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용한 쌀가루가 습식인지 건식인지, 조리법이 해당 제품에 맞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비슷해 보이는 쌀가루도 만드는 방식에 따라 필요한 물의 양과 완성된 음식의 식감이 달라집니다.
